2015/7/16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고려 충절공 최복하의 유허비....
외진 산길 한켠에 스산하게 서 있어 찾는 이가 없다.
선생은 1390년 울진군 북면 고목리 기곡동 무령현에 입향한 강릉 최씨 입향조(入鄕祖)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제학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고려말에 국운이 멀지 않음을 미리 예견하고 벼슬을 버리고 이곳 무릉현에 은거할 때
태조 이성계는 고려 유신인 선생에게 국사를 논하고자 권기시를 보냈으나 선생은 불복하고 왕을 잃은 한을 달래며 산천을
소요할 때 이태조는 고려 마지막왕 공양왕을 원주에 유폐시키고 간성으로 보냈다가 다시 삼척 근덕면 궁촌리 고돌치 깊은 곳에
가두었다.
이에 의분을 참지 못한 선생은 고려때 장군 울진사람 장천영, 임제, 태학생, 전생 등과 모의하여 공양왕을 복위 시키려고
왕의 둘째아들 왕석과 더불어 울진 삼척 등지에서 수천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고려복벽운동을 일으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관군에 의해 모두 참형을 당하여 많은희생만 남기고 좌절되고 말았으며 그후 선생의 행적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로부터 울진은 역모의 반동지역으로 지목되어 군(郡)이 현(縣)으로 격하되고 울진지역이던 원덕면을 삼척군에, 소천면을
봉화군에, 수비면을 영양군에 각각 편입 시켰으며 병비마저 전폐 시키고 말았다.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고려복벽운동의 주역이신 충절공의 유덕을 기리고자 강릉 최씨 문중에서 유허비를 건립하고 울진 문화원과
북면 3.1정신 보존회와 지역민의 뜻을 모아 이곳을 성역화 하고 울진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자라나는 후세들의 교육의 장으로
승화 시키고자 비를 세우다. - 건립 취지 설명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