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0(바람도 불고 춥다)
며칠 전,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국제전화가 왔다.
가슴이 덜컥했지만 침을 두번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Ms. Lily의 전화인 줄 알고 어설픈 영어를 다시 끄집어 내야했기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말이 들려왔고,
역시 Lily의 부탁을 받은 그 한국인은,
끊어진 나의 소재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에 따라
인터넷으로 찾아낸 교회에 연락하여 나를 찾아낸 것이다.
몇년 단위로 행사처럼 Lily는 나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하곤 한다.
아마도 나처럼 갑자기 옛생각으로 몸서리가 나면 정신없이 찾는지 모르겠다.....
1984 ~ 1986년,
서른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내가 Malaysia에서 Engineer로 근무할 때,
Lily와 몇 아가씨가 현지인으로 우리 사무실에 근무 하였다.
그들은 민족적 갈등을 겪는 현지인으로,
우리는 열대의 나라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한국인으로
그 젊은시절을 처절하게 감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끈질기게 살았는지 모른다.
이제는 같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들도 이 사진으로 밖에 추억할 수가 없지만
Lily는 몇년에 한번씩 불쑥불쑥 연락이 오곤했다.
우리가 Malaysia를 떠나고 몇년 후 Lily는 호주로 시집 갔노라고
몇가지 선물과 함께 소식을 전해 왔었다.
(모든 사무실 직원들이 유명한 바닷가로 야유회를 가서 찍은 사진일 것이야..)
"This might be last chance to visit Korea in my life, I'm sixty-three years old already."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Lily의 소리에,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말았다.
Lily는 남편과 함께 4월에 한국에 올 계획이며 나와 내 가족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오늘....
집안을 온통 뒤져서 그 시절의 사진을 몇장 찾아냈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고,
그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든, 자신을 위한 것이든..
우리가 젊음을 불살라 일했던,
그 눈물의 시절은 이미 추억으로도 재생해 낼 수가 없다.
오직 그저 부스려져 버린 기억의 조각들이지만
어딘가에서 그 기억들을 몇개 씩은 맞추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 조각들을 찾아 다니는 나이가 되었는가 보다.
코 끝이 싸해지고 가슴이 무너지지만
이제는 다시 그 시절로 갈 수가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일 해 볼 수도 없다.
젊은 날의, 잘 생긴 나의 시간이여.....
(아마도 Sungai Petani라는 곳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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